산다는 그것/◑보내는 마음 沿

가져 갈 버리고 갈 인연도 없다, 강물이 되어

붕정 2009. 3. 25. 23:17

오래 전부터 언젠가는 '나'와 작은 인연을 맺었던 분들의

인상적 만남과 대화, 삶의 언저리를 쓰고 싶었다.

대개는 나와의 인간 관계는 80년대부터 기억을 더듬게 될 것 같다.

막상 시작해 볼까 생각하니 막막하다.

기억의 파편과 아련한 편린들을 영화 감독처럼 필름을

수집하고 편집해야 하는 고뇌는 인연의 값으로 쳐야 할 것이다.

 

여기에 언급되는 분들의 이름은 순서에 상관없이 모두 소중한 분들이다.

 

물론, 여기엔 '나'라는 스펙트럼을 통해 바라본 것이라 매우 주관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나'의 일방적 앎의 방식이었던 적을 끄집어낼 수도 있다.

워낙 졸필이라 이유 아닌 '절필'을 했던 터라 시작이 어렵다.

 

이미 작고하신 분들도 있고,

오늘도 어제처럼 언제나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라 언급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작은 인연의 여행을 떠나볼까...  욕망의 마음을 덜어낸다.

 

소심한 '나' 자신에 대한 고해성사인지도 모른다.

시작도 어려울 것이고 과정도 힘들 것이고 다 쓰는 것 자체를 예단하기 어렵다.

어떤 호기도 아니고 내가 가야 길이 또 얼마 남지 않아서

가지고 갈 것도 없고 남길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이 글을 쓰는 과정은 행복해 할 '나'를 위로한다.

 

그래도 하나 걱정되는 것은 있다.

가깝다 해서 언급하는 인명은 아니지만

행여나 졸필에다가 부족한 '나'를 알아보는 분들에게는

많은 양해와 고매한 인격으로 어리석은 '나'를 용서해 주길 바랄 뿐이다.

 

저에게 술 한 잔 건네 주고, 지금은 금연했지만 담배 한 대 나눠 피웠던 모든 분들이

제게는 더없이 소중한 것이었음을 당당히 밝히는 바이오니 거듭 용서를 바랍니다.

작고 보잘것 없이 누추한 삶을 살아왔지만 내일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달립니다.

여기에 부엉이 셈식으로 인연의 보따리를 펼치렵니다.

많은 걱정이 앞섭니다.

저를 아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몸을 낮추어 봅니다.

 

지금 밖은 난설헌의 봄비가 옵니다.

 

때묻은 작은 이야깃거리를 닦아내려니...

더 좋은 에피소드가 있으면 소제목들은 바뀝니다.

 

론인 故송건호-내가 유일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와 선생님 앞에서만 담배를 못 피고 안 피웠다.

인 박몽구-영혼이 맑은 시인이자 다시 태어나도 만나고 싶은 바이올린같은 사람이다.

화감독 정지영-영원한 자화상으로 헐키드이며 인간적 존엄함과 자유주의자로서 지식인이다.

님 법정-불일암 찾아가기 전 입맛 돋우는 송광사 점심 공양, 상좌에게 욕도 할 줄 아는 절집 주인. 극락왕생하소서...

사 홍창의-아마 예수가 검은머리 동양인이었다면 인품마저도 선생님과 같았을 것 같다. 

부 천노엘-아일랜드 신부의 한국, 한국인에 대한 천착과 그늘진 곳 마음 아픈 이들의 친구, 나의 교황

수 故박현채-그해 여름 경제학자 박현채 교수와의 뚝배기 보신탕 한 그릇 참으로 맛있었다.

사 故이상윤-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동굴에서 나오게 손잡아주셨던 나의 은사님

호사 김한주-'서울대 나온 놈들 인간성 좋은 놈 못 보았다. 김한주만 빼놓고' 다들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노무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990년 국회에서 첫인상...아직도 뚜렷합니다. 아직 순서도 아닌데, 아직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강물이 되시겠다고 바다가 되시겠다고 떠나버리십니까. 녹슨 철조망도 걷어내지 못하고 있는데, 임을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길로 가버리시다니 하지만 가시겠다니 소월의 마음으로 붙잡을 수는 없습니다. 바보 노무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고이 편히 강물처럼 가소서.

1990, 작은 약속도 진심으로 실천하는 성자와 같은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더라.

사 윤권-목사짓거리 안 했으면, 노래 멋드러지게 잘하는 크로스오버 철학자가 되었을 텐데...

회운동가 故노준현-황토처럼 선한 마음 다 퍼주고 혼자 몰래 모질게 아프다 쓰러져 간 오월의 슬픈 넋.

화부장관 김명곤-'방안 퉁소'가 바람나서 세상을 노래하고 세상을 몸짓하며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네.

송인 주철환-고등학교 국어교사였어도 충분히 세상을 휘어잡았을 윤동주적 성품을 지닌 마이더스.

오동수-가끔 이런저런 얘기 나누면 술 한잔 사이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그리운 나의 사람아, 거긴 편안한가.

수 故김광석-내 결혼식 축가해 준다면서 뭐냐, 대신 거기서 '타는 목마름으로' 노통께 구성지게 뽑아 드리길...

수 심성보-전교조 해직과 교육에 대한 열정, 그리고 전교조 여성국과 맺어준 인연으로 탄생한 '성교육교과서'

인 故황병하-전철 선반 위 신문에서 민병일 시인 '황병하 가다'를 보고 미국에 다시 갔구나 했는데...

수 신영복- 처음에는 책으로, 아픔을 창조한 글씨로 그리고 세실커피숍에서는 거대한 역사로 만나다.

가 조규철-산하촌 산등성이도 같이 누비고 대나무스키도 고고씽씽했던 유년의 미리내...

여자 박미정-비가 오면 비를 핑계삼아 보고 싶다.

인 故박종권-뱃머리 탕탕 쳐서 시간을 재촉해 가버린 다음에도 막걸리 한 사발에 사랑가 대목 적셔온다.

 

 

 벗 김성호, 이한창, 박홍주, 정치인 이해찬, 출판인 김용항, 출판인 이선규, 교수 황상익, 전 여성부장관 장하진, 무용가 강혜숙, 출판인 이기섭, 법무사 박형기, 소리꾼 임권택, 군인 이상명, 시인 김준태, 변호사 故홍남순, 의사 양길승, 정치인 김미경, 아동문학가 김녹촌, 언론인 박병서, 묘비1번 故함광수, 농구인 박찬숙, 화가 최민화, 수녀 임수지, 만화가 오금택, 시인 고은, 소설가 현기영, 시인 故김남주, 언론인 안기석, 언론인 김중배, 시인 박선욱, 사회운동가 박현주, 가수 김원중, 문화운동가 故문호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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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되새김질하는 중... 기억의 판도라를 열심히 열고 있는 중...

무엇을 어떻게 쓸까... 정리가 더 어렵습니다.

갑자기 이 분들의 공통점이 생각났습니다.

내 생각이겠지만 물욕에는 관심 없는 평온한 마음만을 지닌 분들 같습니다.

그러나 이 분들은 큰 부자들로 기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