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그것/♣가르치며 배우다

모깃불 속에 잘 익어 피어오르는 情 할머니, 구운지몽

붕정 2009. 7. 27. 10:47

 

 ///그 

여름 장마가 그치자 기다렸단 듯이 매미가 자신을 알리느라 소리치기 바쁩니다. 덩달아 잠자리도 어디선가 얼굴을 내밀며 나도 '여름의 아이콘'이다 으스대면서 비행을 합니다. 이럴 때쯤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으로 가는 휴가와 달리 추억과 훈훈한 인심을 캐러 고향 또는 농촌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입니다. 흙벽을 사이로 바람과 물소리, 나른한 시간 속에서 밤은 여지 없이 어릴 적 알싸한 추억으로 F.O(페이드아웃)에서 O.L(오버랩)으로 이어집니다.

할머니 무릎에 얼굴을 묻고 '어흥~'하고 나타나는 호랑이 이야기부터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떡' 이야기까지 밤하늘 별빛보다 더 뚜렷하게 할머니의 이야기는 여름밤을 수놓습니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끝날 즈음 졸음에 겨울 때 꿈을 손짓하는 유성이 긴 꼬리를 저 건너 산으로 늘어뜨립니다. 거기에 모깃불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나무 평상에서 할머니의 부채질은 한여름을 키워내는 꿈을 꾸게 해 주는 요술 부채였던 것을 어렴풋이 찾아냅니다.

이 글은 수험생들에게 가르치면서 매번 나도 모르게 돌아서서 코끝이 맵도록 눈물나게 하는 마력을 지녔음을 알게 됩니다. 주요섭의<할머니>라는 수필입니다. 이 글과 더불어 송영의 성장소설 <은하 수저쪽에서>에서는 갈수록 매말라가는 현대인의 애틋한 추억과 감정에 마중물 역할을 하겠기에 소개합니다. 여러분이 세계적 부자인 빌게이츠나 소로스도 가져보지 못한 할머니의 사랑을 캐내어 영혼의 부자이길 바랍니다.

 

여기에 동의하는 분들은 동승하셔도 좋습니다. 안전벨트을 조금은 느슨하게 해도 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과 같이 잠시나마 행복의 세계로 출발하겠습니다.

 

 

아직도 생각날 때마다 눈물지는 일이 있습니다.

그 때 평양으로, 어디선가 곡마단이 왔는데,

그 중에도 나 어린 내 호기심을 제일 끄는 것은

인도 어느 산에서 잡아 왔다는 큰 뱀이었습니다.

그것이 어찌도 보고 싶던지 여쭈어 보아야 소용없을 줄은 뻔히 알면서도,

「할만, 나 돈 닷 돈만!」

하고 말해 보았습니다.

그 때 입장료가 소학생은 반액으로 5전이었습니다.

할머님은 언제나 꼭 같은 대답으로,

「나 한 량만 다고. 내 닷 돈 주께.」

하시면서 열쇠 한 개밖에 든 것이 없는 주머니를 뒤집어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때는 왜 그리도 미련했던지요.

생판 억지를 써야 별 수 없을 줄을 빤히 알면서도

그래도 그냥 울고불고 야단을 하였습니다.

그날 종일 밥도 안 먹고, 소리쳐 울었습니다.

종내 그 뱀 구경은 못하고 말았으나,

거의 매일 그 서어커스단 문 앞에 가서 그 휘장에 걸어 놓은 뱀잡이 그림을 어찌도 쳐다보았던지

아직도 그 뱀과 그것을 잡을 벌거벗은 토인들 그림이 눈앞에 선합니다.  

그 후 십여 년이 지난 작년 가을

오래 해외에 있던 나는 어른이 다 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침 형님 집에 올라와 계신 할머님을 서울서 뵈었는데,

하루는 집안에 아무도 없고 할머니와 나와 단 둘이 있을 때,  

할머님은 주머니를 뒤적뒤적하시더니 가운데 구멍이 뚫린

오 전짜리 백동전 한 푼을 꺼내 주시면서,

「옛다! 자, 이제라두 뱀 구경 가거라!」

하시는 그 목소리는 떨리었습니다.

그 때, 나는 할머님 무릎에 엎디어 실컷 울었습니다.

나는 그 백동전을 가지고 다닙니다.

지금 만리 타향에 있으면서도 그 백동전을 꺼내 볼 때마다

내 눈에는 눈물이 빙그르 돌곤 합니다.


 

/// 

어설프게나마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준을 마련해 삶의 잣대로 삼고 있습니다.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이라든가 '사회 윤리의 책임'이라든가의 가치관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이문이 남는 장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꼬장꼬장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딸깍발이처럼 모름지기 남은 자존 의식으로 제 자신을 위로하곤 합니다. 

이 글을 올리면서 작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주요섭은 친일 작가인 '주요한'의 친동생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 가치관과 국가관의 기준에서 친일 작가류는 될 수 있으면 배제하려고 노력합니다. 고민의 해결을 위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임종국 선생의 책을 펼쳐 보기도 했습니다. 또한 친일 행위 작가에 대해서도 다시 검색하기도 했습니다. 이유를 떠나 친일 행위 작가 목록에 없음을 위안삼아 좋은 글이라 여겨 올려보았습니다.

이에 이 글의 게재에 따른 반론이나 이의를 제기하는 것들이 올바르다고 여겨지면 삭제토록 할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올바른 민주주의가 활짝 웃는 곳에 주인공인 국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주의가 너무 아파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고귀한 추억마저도 아플까 걱정입니다.

미디어법이 불법이고 민주적 절차에 어긋난 위헌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여기까지가 여러분을 안전하게 모시는 것이 제 역할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위 사진의 출처는 영화 <집으로>입니다.